스튜어디스=왕소금=백조

어린 시절 ‘스튜어디스’가 맞나 ‘스튜디어스’가 맞나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오해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결론이 낫을 터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무수한 선입견들이 ‘승무원’이라는 직업 앞에 놓여 있다.

이만큼 뭇사람들의 오해가 많은 직업이 있을까? 항공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스튜어디스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가 됐고 또 취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직업이 바로 항공기 승무원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만큼 굴절되고 비틀어진 생각들이 널리 퍼진 직업 역시 스튜어디스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이 꽤 굳건하다.

2005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5년차 스튜어디스 배로사(27) 씨를 비롯한 8명의 승무원들이 최근 발간한 ‘스튜어디스 비밀노트(이하 비밀노트)’에는 이 같은 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그녀들의 속 사정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배씨를 만나 ‘비밀노트’에도 미처 담지 못한 그녀만의 얘기를 들어봤다.






▶“우리만큼 짠순이도 없어요”=‘도도하다’ ‘사치스럽다’. 스튜어디스들의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다. 언뜻 그럴 만도 하다. 비행기 안에서는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한 승무원들이지만 비행기를 벗어난 그녀들의 모습은 항상 꼿꼿하다 못해 말도 건네기 힘들 만큼의 모습을 유지하니까 말이다. 사치스럽다는 이미지 또한 설득력이 있다. 관광명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데다 비행기 안에서 판매하는 고급 면세품을 매일 보는 것이 승무원이다. 원래 수수했던 사람이라도 눈이 높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배씨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런 세간의 모습을 이미 잘 알고 있다던 배씨지만 막상 ‘변명’을 하려고 하니 새삼 억울했던 모양이다.
“유니폼을 입으면 항상 회사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죠. 그래서 항상 자세를 올바르게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비밀노트’에도 이와 같은 스튜어디스들의 남모를 애환(?)이 삽화로 담겨 있다. 공항에 등장하는 멋진 남성 연예인을 보고 자신도 사인을 받으러 달려가고 싶지만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는 관계로 못본 척 꿋꿋하게 지나가야 하는 승무원들의 아쉬움을 담은 컷이다.

스튜어디스들을 모두 ‘명품족’이라고 여기는 시선에 대해서도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배씨는 “어느 곳에서 물건을 사면 더 저렴한지 꼼꼼히 가격을 비교해 더 싼 곳에서 항상 물건을 사는 것이 승무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들 못지않게 저축도 많이 하는 것이 스튜어디스란다. “승무원만큼 짠순이가 많은 직업도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강변했다.






“늘 여행을 다닐 수도 있으니 이만한 직업이 어딨나”라는 세간의 생각도 ‘절반의 진실’이라는 것이 배씨의 생각이다.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승무원의 경우 회사가 운항하는 거의 모든 노선에 탑승한다. 또 한국에서 목적지로 출발한 이후 다시 돌아오는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선입견과 달리 승무원들은 훨씬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배씨에 따르면 대학원에 진학한 승무원의 경우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현지에서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 외에 문서 작성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의외로 ’산더미’라고 한다.

▶수면 아래 발버둥치지만 그래도 ‘백조’=수면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백조.’ 식상하지만 이말만큼 스튜어디스라는 직종을 적확하게 표현한 말을 찾기 어렵다. 가장 화려해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남모를 어려움을 가진 직업이 항공기 승무원들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배씨도 사실 승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수면 위 백조의 우아함 때문. “‘아름다운 사람들’을 콘셉트로 한 항공사 CF에 등장한 여성의 이미지가 너무도 좋았어요.”
그녀 역시 취업준비생 시절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던 ‘럭셔리’한 승무원의 모습과 스튜어디스의 실제 생활과의 괴리 때문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터. 자신의 직업을 백조에 비유한 것도 다름아닌 그녀였다.







하지만 배씨는 재수 삼수도 빈번한 ‘이 바닥’에서 한 번의 응시로 합격했다. ‘타고난 승무원’이라 할 만했다. 그만큼 사고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어느 직장인이나 처음 생각과 실제 모습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녀는 승무원을 꿈꾸는 수많은 준비생들에게도 “정말 해볼 만한 직업”이라며 ‘강추’했다. 많은 전제조건을 달긴 했다.

“기내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승무원이 될 수 있냐고 많이 묻는데 대개 ‘키가 커야 되죠?’ ‘예뻐야 되죠?’ 등 외모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는 배씨가 가장 강조한 것은 다름아닌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이다.
“기본적으로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승객들을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면 친절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10시간 이상 장거리 여행의 경우 밤샘 일은 기본인 데다 시차 적응, 극도로 건조한 기내 습도 등 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씨는 “대개의 승무원들이 틈틈이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요가를 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넘어서야 할 대목이다. 가족 혹은 남자친구 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심적으로 상당히 외로움을 탈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배씨는 승무원을 ‘천직’으로 여긴다. 그만큼 매력있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제 스튜어디스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승무원이 수명이 짧다고들 하지만 앞으로 10년 이상 일해서 후배 승무원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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